Grainstacks at the End of Summer, Evening Effect
1891

건초 더미, 여름의 끝 Grainstacks at the End of Summer, Evening Effect, 1891
모네는1883년 지베르니에 정착해 여생을 보냈습니다. 지베르니의 풍경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아 대부분의 작품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그렸습니다. <건초더미> 연작은 그의 집에 인접한 들판의 건초더미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시간대와 날씨 조건에서 그린 그림입니다. 1890년 여름이 끝날 무렵, 작업을 시작해 이듬해의 봄까지 약 7개월 동안 25점의 작품을 그렸습니다. 이 연작의 전신으로는 1884년에 그린 <지베르니의 건초더미>가 있습니다. <건초더미> 연작을 그리는 시기에 그는 센 강의 아침 풍경이나 포플러 나무 등 다른 연작들도 함께 작업했습니다. 동시에 여러 그림을 그리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캔버스를 들고 야외로 나갔습니다. 하나의 연작을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날씨와 빛에 따라 대상의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는 원하는 풍경을 포착하기 위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에 걸쳐 반복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1890년까지 철도가 프랑스 전역을 연결하며 산업화가 진행되었지만, 프랑스에서 농업은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19세기 프랑스 시골 마을에는 탈곡기가 흔하지 않았습니다. 탈곡기가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탈곡을 해야 했기 때문에 곡물이 탈곡되기 전까지 추수한 이삭을 짚이나 건초로 덮어 보관해야 했습니다. 시골 들판의 겹겹이 쌓인 건초더미는 흔한 풍경이었으며, 보통 여름에 쌓여 탈곡이 끝나는 이듬해 봄이나 그 이후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지베르니가 위치한 노르망디에서는 모네가 그린 건초더미처럼 둥글고 가파르게 지붕이 얹어진 형태가 일반적이었습니다.
모네는 집 근처 들판에서 이웃의 건초더미 위로 비치는 빛의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했습니다. 그는 자연에서의 관찰을 통해 하나의 대상이 완전히 다른 색으로 변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딸에게 맑은 날과 흐린 날을 그리기 위한 캔버스 두개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러나 두개의 캔버스만으로는 시시각각 변하는 건초더미의 빛을 표현할 수 없다고 판단해 수레에 최대한 많은 캔버스를 싣고 돌아왔습니다. 그는 수많은 이젤과 캔버스를 가지고 다니며 빛이 변할 때 그 장면에 가장 가까운 캔버스로 옮겨 작업했습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 – 1875),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em van Gogh, 1853 – 1890), 폴 고갱(Paul Gauguin, 1848 - 1903)의 작품에서도 건초더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화가도 모네처럼 하나의 대상을 철저하게 탐색하지는 않았습니다. 모네는 아침, 낮, 저녁, 황혼 등 다양한 시간대에 건초더미를 관찰하고, 건초더미의 위치와 구도를 거의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주변 환경과 빛의 변화를 포착했습니다. 동일한 주제를 반복적으로 그리는 그의 연작 작업은 빛과 색채에 대한 탐구를 심화시켰습니다.
2019년 5월 14일 뉴욕에서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 모네의 <건초더미>가 1억 1,070만달러, 한화로 환산하면 약 1,400억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지베르니에서 그린 25점의 연작 중 하나로, 미술관에 소장되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인상주의 작품이 최초로 1억 달러를 돌파하게 되었으며, 인상주의가 탄생한지 150주년이 되는 오늘날까지도 모네의 그림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